기승전결이 이렇게나 완벽할 수 있어? 쿠이 료코는 진짜 만신이다...
오타쿠 홈에다 써 놓았던 후기를 조금 정리해 올려놓는다
1. 식인
던전밥의 좋은 점은 꼽아도 꼽아도 부족하지만 먼저 '식인'이라는 소재를 아주 클래식한데 현대의 감성에 맞게... 담담하게 담아냈다는 것에 있다 <개인적 생각>
식인행위 ㅋㅋ 라는 키워드가 던전밥에서 주요한 키워드도 중요한 키워드도 아니라(아주 떼놓을 수도 없다고 하더라도) 가장 먼저 좋았다는 점으로 들고 오기 그렇긴 한데 그럼에도 너무 좋아하는 부분이라 꼭 이야기하고 싶었음
일단 존나 납작하게는 민감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으면서+크리피함을 자꾸만 부각시키는 것 자체를 정말 좋아해 이건 다른 분이 쓴 던전밥 후기였는데다들 마물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사식인에 가까워서라고 하잖아? 근데 독자들은 마물식을 거부하는 모습을 되려 웃음포인트로 받아들이니까 물론 마물 먹는 것도 웃음포인트긴 함…. 별다를 것 없다~ 는 느낌을 과장하지않는다는게 좋아
언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던전밥처럼 먹는 데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할 거면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안 썼으면 좋겠다" 좀 극단적인가? 그래도
사실 식(食)과 욕망의 상관관계... 궁극적인 사랑은 먹어버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많잖아? 존 나 질 린 단 말 야
식과 욕망 궁극적으로는 식인으로 이어지는 데 대한 이야기는 존나 과거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나같이 존나 식견 짧은 사람도 주르륵 읊을 수 있듬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에리식톤일 거고 고야의 그림인 자식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크로노스 신화도 마찬가지일 거고 동양에서는 인간의 간을 먹는 것으로 인간이 되는 구미호의 이야기 아니겠어요
넓은 의미로는 「신세기 에반게리온(1996)」의 LCL도 있을 거고 식인을 해야 하는 저주를 받은 연인들의 이야기 루카 구아다니노의 「본즈 앤 올(2022)」이나(근데나아직도이거못봣음 하 스크리나로 같이볼사람구해요) 식인하는 소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조예은의 「고기와 석류(2021)」도 비슷한 궤겠지
하지만 이 작품들은, 물론 소설과 영화와 만화라는 표현방식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식인행위 자체를 좀 꼼꼼하게 표시하는 경우가 없잖아 있잖아 아니야? 몰라 나는 그렇게 느꼈어(심지어 본즈앤올은 제대로 보지도못했는데도) 몰라몰라 식인소재 대놓고 갖고와서 빨아주느게싫어아아앙 유치하단말이야아아앙
하지만 던전밥은 <이게 포인트인 작품이 아니니까 그렇겠지만> 이 행위에 대한 거부감과 당연?함을 좀... 아무튼 가볍게 다뤄서 좋았다고 누구는 이게 유치하다고 생각할지도 아!무!튼!
파린을 함께 먹는 행위를 과연 식인이라고 할 수 있나 에 대한 의견도 갈릴 것 같은데
파린이 드래곤과 융합되었고 결국 모두가 키메라 파린을 파린이라고 부르는 점에서 식인아닌가 몰라몰라 다똑같애 우리는 모두 우리를 먹는 거야 드래곤도 결국 우리다 우린어디서왔나 오에 수수수 수퍼노바
2. 함께 - 이즈츠미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이즈츠미의 에피소드다 던전밥의 모든 캐릭터가 다 좋지만 이즈츠미의 활용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아무튼 이즈츠미의 에피소드인 95화는 14권에서 가장 많이 운 부분이다 아니 14권뿐만 아니라 던전밥 읽으면서! 통틀어서 가장 많이 울었던 부분이기도 해 아 리뷰 쓰려고 다시 펼쳐서 읽었는데 또 눈물콧물나 킁
이즈츠미는 처음부터 혼자와 자유를 갈망했었는데 결국 필요에 의해서는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서큐버스 에피소드에서도 그랬고)는 것을 지속적으로 깨닫는 캐릭터다 근데 이 캐릭터가! 처음부터 동료였다가 녹아들어가는 캐릭터였으면 이만큼의 감동이 오지 않았을 거 아니야 이 활용 자체가 대단한 발견은 아님에도! 이즈츠미가 이미 둘로 섞인 존재라는 특수성이 이 작품에서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이즈츠미로 하여금 파린의 소생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에도 물론 큰 의미가 있겠지만
사실 나는 모험물이든 뭐든 "중간부터 합류하는 동료"에 대한 거리감이 있었어…, 이를테면 나루토의 사이라든가 원피스의 비비 이후의 동료들이라든가(알라바스타까지밖에 제대로 안 봐서일 가능성 높음) 피치피치핏치의 남쪽 바다 인어들이라든가...ㅋㅋ
심지어는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가오갤에서도 합류하는 동료들에 대한 거리감이 좀 있단 말이지(니가뭔데)
그런 캐릭터들을 싫어하는 것은 전혀, 절대 아니지만 그냥 아쉬움이라든지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단 말이지 캐릭터에 정들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그냥…낯을 많이 가렸던 것 같애 작품에서
그런데 이즈츠미가 내가 본 작품 중 가장 강렬하게! 새로운 주요인물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줬다 작가 특유의 덤덤한,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스타일에서도 그렇겠지만! (그가 과장해 그리는 건 개그씬뿐이야) 아무튼 이즈츠미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 '함께' 라는 키워드에서 시사하는 바가 존~나 많다는 거
좋아하는 대사 한번 더 씀 "이게 네 취향이냐? 꽤나 근사한데."
이건 정말 너무 당연한 부분이지만, 나는 명명命名에서 힘이 온다는 말을 좋아하다 못해 믿는 사람인데, 아세비가 아니라 이즈츠미로 다니게 됐다는 점에서부터 좋아한다 별명을 지어 부르는 것보다 본명을 알려주는 거(그리고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서 이즈츠미가 먼저 알려줬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음) 이즈츠미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미 마음을 열었던 거야…,
아니 울었던 부분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다른 이야기부터 구구절절 해버리고 말았네
좋아하는 것만 해서는 앞으로 두번 다시 못 만나게 될 거야.
이 장면에서 정말 울컥해서 눈물 줄줄 흘렸다 뭐라고 해야 하지…. 마르실이 상냥한 사람인 것이랑 별개로 어떤 한 사람을 원하고 그리워해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동적이기도 했고
인연이 얼마나 찰나의 것인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보다 인간과 엘프의 관계에서! 조금 덜 직접적이면서도 극단적으로 표현을 해 준 것 같았고 그래
아래에서 다시 쓰겠지만 던전밥에서 지칭하는 인간종의 폭이 아주 넓다는 것이 더 이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준다. 원래 엘프라든지 드워프라든지 우리랑 다른 특징을 가진 종족들은 별개로 구분하고 봤는데 말야…. 그래서 아주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 맺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럴 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건 "함께" 라는 단어로 정의된다
2020년에 한창 정신과 다닐 때 쓴 일기 정병전시 아니고요 친구들끼리는 이거 밈으로 쓰고요 애초에 4년 전에 쓴 아기공주 생각이 뭐 얼마나 대단하겟어요? 걍웃어넘기쇼
라고 말햇지만 …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여기서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서(머리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좀 더 울었던 것 같아
딱히 동일시하는 건 아니고 공감능력. 감수성. 뭐 그런 게 좋은 거 아니겟수
정신과 의사가 했던 말보다 종이 속 미소녀의 말이 더욱 깊게 다가오다니 세상 정말 무의미하다(사실 정신과에서 상담이 중요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맺을 때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게 관계를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라고 믿었다 사실 이런 마음이 하루아침에 녹아내리는 것은 아니고 내 주장도 영 틀린 것만은 아니겠으나, 결국 나 좋은 대로만 거리를 두면 다시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주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
감동받은 것치고는 너무 별것 없는 에피소드며 감상평인 것 같아서 머쓱하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다는 감정은 진짜였으니까
이즈츠미는 개과천선하지 않는다!(사실 던전밥의 그 누구도 개과천선하지 않는다! 그 거대한 모험을 마치고서도 겨우 한 발짝 성장했을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 안의 고양이와 함께 살아간다 미궁을 함께 탐험한 동료들에 대한 유대를 가지고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도 상대에 대해 거대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그게 이즈츠미가 좋아하는 일만을 해서 얻은 것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즈츠미의 성향이 크게 해쳐지지 않으면서, 서로간에 조금씩 민폐를 끼쳐가면서 하나의 관계를 이루는 결말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려고 애써 덜어내지 않아도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은 없고 그게 자연스럽다는 듯 살아가게 되는 거
좋은 것만 해서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말아
마르실이 말하는 삶의 태도와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에서도 말이지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 맥락에서 살짝 벗어나는 감이 있더라도 좋아하는 시 하나를 항상 인용하곤 한다
ㅈㄴ 유명 시…, 최승자 시인의 「네게로」, 『이 시대의 사랑』, 1981.
흐르는 물처럼/네게로 가리./물에 풀리는 알콜처럼/알콜에 엉기는 니코틴처럼/니코틴에 달라붙는 카페인처럼/네게로 가리./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독 균처럼/삶을 거머잡는 죽음처럼.
던전밥은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이 시를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건…, (이후 대충 확대해석 같은 말.)
3. 함께 - 시슬
나는 시슬도 정말 좋아
시슬의 가장 큰 욕망이자 마지막 남은 욕망이 좋아하는-연인적 애정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도 너무 좋음-인물, 즉 데르갈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었단 말이지 처음엔 지키려고 했다지만…,
마르실의 말처럼 이 미궁으로의 여행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단 말이지 그게 날개사자가 욕망을 먹는… 인간들이 보기엔 징벌 개념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 라이오스의 말대로 <날개사자는 그것이 인간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다른 모험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슬이 만들고, 시슬이 깨닫기 위한 미궁이었다는 점이 좋았어 거기에 편입되면서 다른 사람들이 한 걸음 성장한다는 것도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의 비유라서
애초에 나는 사랑(연애감정 아님)에서 비롯된 어떠한 재앙이 좋다
트위터에서 한번 알티를 탔던 만화인데 그 좀비 아포칼립스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알아? 인류는 사랑으로 멸망했다 < 자주 생각하는 지점이고 실제로 표현해 준 작품이 있음에 감사하다 아무튼 이게 던전밥의 메인 재앙과 크게 다를 것은 없음
악역에게 서사 주지 말자거나 잘잘못을 따지자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고 그런 고민 안 해도 되는 작품 간만이얌…. 논쟁하다가 지치고 말잖냐
특히나 시슬의 최후를 생각하면 참 다정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야아드가 너무 좋은 사람이고 흐어어엉 하 난 시슬이 진짜 진짜 진짜 좋아
시슬의 출신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더 그렇지 이어지지 않아도 누구보다 우선시할 수 있는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같은 거
시슬에서 마르실로 넘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아니 진짜 정말 <정석>으로 만들어서 좋지 않니 이것도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 해를 끼침. 으로 비롯되는 일이니까
나는 그래 아무튼
4. 아무튼 오타쿠적으로 좋았던 부분
모든 부분이 좋지만 이제 슬슬 대충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 내가 무언가를 접하는 속도와 후기를 남기는 속도가 비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타쿠처럼 구구절절 떠들 시간은 없고 꼭 늘어놓고 싶었던 부분들
"엽, 데몬 이터!"
이 말을 나마리가 먼저 한 것도 정말 좋지 나마리는 정말 동료야
위에서 <명명>이 나한테는 정말! 중요하다고했는데 왕이 된 라이오스를 가장 먼저 칭송하고 그에 어울리는 별명을 지어 불러준 것이 불쾌한 프레임을 둘러싼 인물인 나마리라는 것이 나는 정말 깊게 와닿았어
파린이 드래곤과 <함께> 가는 장면이 정말 좋았어 파린은 인간적이면서도! 정말 다정한 인물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가 살기를 바랐던 거겠지 주변에 산처럼 쌓인 고기를 해체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이 다정함이 좋았다는 이야기 이미 트위터에 스포 안 가리고 돌더라
하지만 그만큼 다들 좋았던 부분이겠거니 하고 넘어갑시다
특히나 파린과 대화하는 상대는 유익사자잖아
"나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맞나? 지금 퇴근길이고 책이 없어서
아무튼 그런 뉘앙스로 배고픈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정밀로 악마라는 존재가 라이오스의 말대로 고통을 주기 위한 존재는 아니라는.걸 또 분명히 드러냈음 다정한 파린을 통해서….
보통 인간이 인외의 마음을 어찌 이해하겠냐만은
유익사자도 라이오스도 서로 먹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거 정말 직접적이고 아무튼 져타… 냠
던전밥은 생각보다 명확하게 끝나지 않는다 예상한 부분이었고 이런 식으로 끝나는 작품이 세상에 날리널리 퍼진 지 아주 오래 됐다지만 좋다고 하 나 너무 저능해 ㅅㅂ 이 좋음을 어떻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미 <크라켄> 에피소드에서 나왔지만 던전밥은 불교적 마인드? 라고 해야 하나 단어가 뭐지 아무튼 그 성격이 굉장히 강하단 말이야
삶과 욕구 먹음 서로가 서로를 먹고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그런… 설명을 좆같이 하게 되는데 그런 걸 정말 작품 전반에 걸쳐서 너무 완벽하게 엮어내줘서 좋았음
이러한 불교?적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는 … 히아시다 큐의 『도로헤도로(2000-18)』를 얘기 안 할 수가 없는데 (내가 좋아해서 억지로 엮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삶이란 위아래가 없는 진흙탕이라 말하는 점, 인간과 마법사의 관계가 돌아서 섞이는 점, 먹어서 결핍을 채우고 이해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점 같은 게 떠오르면서
… 좋았다고
어휘력 ㅈㄴ 떨어져
라이오스는 인간을 싫어함 그건 아주 대놓고 마물이 되고 싶다... 마물과 가까이 할 수 없는 저주를 받았다. 카블루의 <인간에 관심이 없다>(라이오스는 좋은 놈이고 이걸로 싸패억까 당하는 것은 안타까웠으나 이 말 절대 틀렸다고 생각 안 해)는 말로 표현이 되었고
그런데 그런 사람이 결국 수많은 사람들과 하나되고 받아들이면서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참 다정한 이야기임 나도 이렇게 사람 싫어하는데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 아니 그리고 어떻게 라이오스와 마르실의… 유익사자로 인한 상실을 그렇게 센스있게 풀어낼 수 있지 아 진짜 재능에 ㅈㄴ 질투
작가는.존나 세상과 삶을 사랑하지만 변태가 맞고 나는 삶을 사랑하는.사람은 다.변태라고 생각한다
뭐그렇더라
식이란 삶의 특권이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계속 먹어야만 해.
생물을 데려오거나 버리지 맙시다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사상이 드러나는! 던전밥의 두 마무리로 맺음…